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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호메르스의 대서사시:오디세이 연재]늙은 개 아르고스, 주인을 알아보고 마지막 눈을 감다(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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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거지의 모습 속에서 오직 한 생명만이 20년 전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20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났다.

그러나 기쁨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오디세우스의 궁전에서는 여전히 구혼자들이 주인처럼 행세하며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텔레마코스는 먼저 궁전으로 돌아갔다.
오디세우스는 늙은 거지의 모습을 한 채 충직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함께 뒤따르기로 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왕.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남편임을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는 모욕을 견디며 누가 충성스럽고 누가 배신했는지 살펴야 했다.

그런 오디세우스를 가장 먼저 알아본 존재가 있었다.

오래전 그가 직접 길렀던 사냥개 아르고스였다.

늙고 병든 채 거름더미 위에 버려져 있던 아르고스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기다렸던 주인을 바라본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보다 먼저 궁전으로 돌아간 텔레마코스

새벽이 밝자 텔레마코스는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을 나설 준비를 했다.

그는 창을 손에 들고 에우마이오스에게 말했다.

“나는 먼저 궁전으로 돌아가겠소.

어머니께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 드려야 하오.

어머니께서는 내가 구혼자들의 매복에 희생되었을까?

밤낮으로 걱정하고 계실 것이오.

그대는 잠시 뒤 이 낯선 손님을 도시로 모시고 오시오.

궁전에서 음식을 구한다면 구혼자들의 모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오.

마음은 아프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들의 횡포를 당장 막을 힘이 부족하오.”

늙은 거지로 변한 오디세우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고난을 견뎌 온 사람이오.

그들이 어떤 모욕을 주더라도 때가 올 때까지 참을 수 있소.”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와 잠시 눈을 맞춘 뒤 힘찬 걸음으로 도시를 향해 떠났다.

한때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바다로 나섰던 소년은 이제 아버지와 함께 왕국을

되찾으려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궁전에 도착한 텔레마코스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늙은 유모 에우뤼클레이아였다.

그녀는 기쁨에 겨워 달려와 텔레마코스를 끌어안았다.

궁전의 충실한 시녀들도 하나둘 모여들어 그의 머리와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잠시 뒤 페넬로페가 위층 방에서 내려왔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여신 아르테미스나 황금빛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 아들의 머리와 두 눈에 입을 맞추었다.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텔레마코스야, 네가 다시 살아 돌아왔구나.

나는 네가 필로스로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를 타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말해 다오.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들었느냐?

오디세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느냐?”

텔레마코스는 당장 모든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

아버지가 이미 이타케에 돌아와 있으며 멀지 않은 오두막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비밀이 새어 나가면 모든 계획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우선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신들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제가 죽음의 위험을 벗어나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로스에서 네스토르 왕을 만났고, 스파르타에서는 메넬라오스 왕을 만났습니다.

메넬라오스 왕은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에게서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 있는 요정 칼립소의 섬에 붙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배도 없고 동료도 없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텔레마코스는 자신이 여행 중에 들은 소식만 전했다.

그 말을 들은 페넬로페의 마음에는 희망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은 기뻤지만 그가 언제 돌아올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귀환을 감춘 텔레마코스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판을 완성하려면 어머니에게조차 진실을 숨겨야 했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이 땅에 돌아와 있습니다”

그때 텔레마코스와 함께 이타케로 온 예언자 테오클뤼메노스가 페넬로페에게 말했다.

“왕비님,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신들이 보내신 징조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오디세우스께서는 먼바다의 어느 섬에 붙잡혀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고향 이타케에 돌아와 계십니다.

지금 이 땅 어딘가에 숨어 집안에서 벌어진 일을 살피며, 악한 자들을 심판할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페넬로페는 놀란 눈으로 테오클뤼메노스를 바라보았다.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남편의 소식을 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에는 보상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꾸며 낸 사람도 많았다.

희망을 품을 때마다 더 깊은 절망이 뒤따랐다.

페넬로페가 조용히 말했다.

“나그네여, 그대의 말이 사실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그대를 은인으로 여기고

귀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대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텔레마코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오클뤼메노스의 예언은 정확했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이타케에 돌아와 있었으며, 바로 그 순간에도 늙은 거지의

모습으로 왕궁을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예언을 듣고도 온전히 믿을 수 없었고, 아들은 진실을 알고도 말할 수 없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었다.

 

거지로 변장한 왕이 자신의 도시를 향하다

한편 오디세우스는 에우마이오스와 함께 오두막을 나섰다.

그는 낡고 해진 옷을 입고 어깨에는 초라한 자루를 멨다.

손에는 길을 짚을 거친 지팡이를 들었다.

왕의 위엄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테네가 만들어 준 주름진 얼굴과 굽은 어깨만 보면 누구든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며

구걸해 온 늙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바위투성이의 험한 길을 따라 도시로 내려갔다.

오디세우스는 길가에서 이타코스와 네리토스와 폴릭토르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샘을 지나쳤다.

샘 둘레에는 포플러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위쪽에는 물의 요정 님프들에게 바친

제단이 놓여 있었다.

숲과 밭, 샘과 언덕이 오디세우스의 눈앞에 차례로 나타났다.

모두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고향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돌아왔다는 기쁨을 드러낼 수 없었다.

에우마이오스는 곁에 있는 초라한 노인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거지에게 도시에서 조심해야 할 일을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궁전에는 마음이 거칠고 오만한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대가 음식을 구하려 한다면 어떤 모욕을 당하더라도 참아야 할 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세상을 떠돌며 그보다 더한 고통도 많이 겪었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견뎌 보겠소.”

 

배신한 염소치기 멜란티오스

도시로 향하던 두 사람은 길 한가운데서 염소 떼를 몰고 오는 멜란티오스를 만났다.

돌리오스의 아들 멜란티오스는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염소를 돌보는 하인이었다.

그러나 주인이 사라진 뒤에는 구혼자들의 편에 붙어 그들을 위해 가장 좋은 염소를 골라 바쳤다.

그날도 구혼자들의 잔치에 내놓을 염소들을 몰고 가는 중이었다.

그는 에우마이오스와 낯선 거지를 보자 비웃음을 터뜨렸다.

“꼴좋은 자가 또 다른 거지를 데리고 가는구나.

신들은 언제나 비슷한 자들끼리 만나게 하는 모양이다.

저 늙은이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

궁전으로 데려가 구혼자들의 음식을 축내게 할 셈이냐?”

멜란티오스는 말로 모욕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나가면서 오디세우스의 엉덩이께를 사납게 걷어찼다.

오디세우스의 몸이 흔들렸다.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불길처럼 솟구쳤다.

멜란티오스의 머리를 붙잡아 바위에 내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지금 정체를 드러내면 모든 계획이 무너질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아무 말 없이 멜란티오스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만 마음속에 그의 얼굴과 행동을 깊이 새겨 두었다.

주인이 없을 때 어떤 사람이 충성을 지켰고 어떤 사람이 등을 돌렸는지

하나씩 드러나고 있었다.

 

 

20년을 기다린 늙은 개 아르고스

마침내 오디세우스와 에우마이오스는 궁전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는 음유시인 페미오스가 연주하는 수금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운 고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담장 밖까지 퍼졌다.

궁전의 주인이 돌아왔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구혼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문 가까이 다가갔을 때 오디세우스의 눈에 한 마리의 늙은 개가 들어왔다.

개는 노새와 소의 거름을 쌓아 둔 곳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온몸에는 진드기가 들끓었고 털은 윤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 개의 이름은 아르고스였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떠나기 전 직접 길렀던 사냥개였다.

그러나 아르고스가 완전히 자라기도 전에 오디세우스는 전쟁터로 떠나야 했다.

젊은 시절의 아르고스는 누구보다 빠르고 용맹했다.

깊은 숲에서 사슴과 산양과 토끼를 뒤쫓으면 어떤 짐승도 쉽게 달아나지 못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떠난 뒤 아르고스를 제대로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인들은 주인을 잃은 개를 외면했다.

늙고 병든 아르고스는 궁전 밖 거름더미 위에 버려진 채 남은 날을 견뎌야 했다.

그때 아르고스가 고개를 들었다.

흐려진 두 눈이 거지 모습의 오디세우스를 향했다.

사람의 눈에는 초라한 노인으로 보였지만 아르고스는 그 모습 속에 감춰진

옛 주인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20년이라는 세월도 충직한 개의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아르고스는 힘겹게 두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주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늙고 쇠약한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도 아르고스를 알아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에우마이오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수많은 전쟁과 풍랑 속에서도 버텨 온 영웅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오디세우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저 거름더미 위에 누워 있는 개는 참으로 훌륭한 모습을 지녔구려.

몸집만 그럴듯한 개였소, 아니면 젊었을 때 실제로 빠르고 용맹한 사냥개였소?”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저 개는 오래전에 사라진 제 주인 오디세우스가 길렀던 개입니다.

주인께서 트로이로 떠나기 전에는 힘도 세고 발도 빨랐습니다.

사냥에 데리고 나가면 어떤 짐승도 저 개를 쉽게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돌보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하인들은 주인이 없으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법이지요.

제우스께서는 사람이 노예가 되는 날 그가 지녔던 훌륭함의 절반을 빼앗아

가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저 개도 늙고 병들어 저렇게 버려져 있습니다.”

에우마이오스는 말을 마치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오디세우스는 잠시 아르고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을 수도,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 그가 진짜 주인임을 의심할지 몰랐다.

아르고스는 마지막으로 주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오디세우스가 떠난 뒤 20년을 견뎌 온 늙은 개는 마침내 주인이 돌아온 모습을

확인한 뒤 눈을 감았다.

마치 그 한 번의 재회를 위해 마지막 숨을 남겨 두었던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왕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말하지 못하는 한 생명은 단 한 번의 눈길로 주인을 알아보았다.

 

자기 궁전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왕

오디세우스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문지방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지만 약속한 대로 아는 척하지 않았다.

텔레마코스는 빵과 고기를 챙겨 에우마이오스에게 건넸다.

“저 낯선 손님에게 가져다주시오.

그리고 궁전 안을 돌며 구혼자들에게도 직접 음식을 청해 보라고 전하시오.

지나친 부끄러움은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오디세우스는 아들의 뜻을 알아차렸다.

구혼자들에게 한 사람씩 다가가 음식을 구하면 누가 자비로운 사람이고

누가 잔인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아테네도 그의 곁에 다가와 구혼자들에게 음식을 청해 보라고 부추겼다.

누가 올바르고 누가 불의한 사람인지 시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테네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다가오는 파멸에서 구할 생각이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낡은 자루를 내밀며 구혼자들 사이를 돌았다.

대부분은 빵이나 고기를 조금씩 던져 주었다.

그들은 낯선 거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면서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재산으로 마련된 음식을 자기 집에서 구걸하고 있었다.

수많은 양과 소, 포도주와 곡식은 본래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기 식탁을 차지한 침입자들에게 한 조각의 빵을 청해야 했다.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모욕은 없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모든 감정을 숨기고 사람들의 얼굴과 말을 하나하나 살폈다.

 

“왜 저 거지를 데려왔느냐?”

오디세우스를 길에서 모욕했던 멜란티오스가 구혼자들에게 말했다.

“저 거지를 누가 데려왔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도시로 데리고 왔습니다.”

안티노오스는 곧바로 에우마이오스를 노려보았다.

“이름난 돼지치기여, 어째서 저자를 도시로 데려왔느냐?

이곳에는 잔치를 축내는 떠돌이와 거지들이 이미 충분하지 않으냐?”

에우마이오스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안티노오스여, 그대는 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말은 귀하게 하지 않는군요.

어느 누가 일부러 떠돌이를 불러오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언자와 치료자, 솜씨 좋은 장인과 노래로 기쁨을 주는 음유시인처럼

공동체에 필요한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법입니다.”

텔레마코스도 나섰다.

“에우마이오스를 꾸짖지 마시오.

이 낯선 손님에게 음식을 내어 주라고 한 사람은 바로 나요.

그대들이 먹고 있는 것도 본래 우리 집의 재산이니 조금 나누어 준다고

아까워할 일이 아니오.”

안티노오스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더욱 커졌다.

 

안티노오스가 던진 발받침(footstool)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안티노오스 앞에 이르러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나리, 제게도 음식을 조금 나누어 주십시오.

그대는 이 자리에 앉은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높은 분처럼 보입니다.

저도 한때는 넉넉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수많은 하인을 거느렸고 어려움에 빠져 찾아온 나그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우스의 뜻으로 운명이 기울어 낯선 땅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가진 것이 많을 때 가난한 사람에게 조금 나누어 주십시오.”

안티노오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떤 신이 이 재앙 같은 자를 데려와 우리의 잔치를 방해하게 했느냐?

너는 사람마다 찾아다니며 음식을 받아 놓고도 내 앞에서 훈계까지 하는구나.”

오디세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대의 모습은 훌륭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오.

자기 것이 아닌 음식을 가득 쌓아 놓고도 가난한 사람에게 한 조각 나누어 주기를

아까워하는구려.”

분노한 안티노오스는 발밑에 있던 나무 발받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향해 힘껏 던졌다.

나무 발받침은 오디세우스의 오른쪽 어깨와 등이 맞닿는 곳을 세게 때렸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바위처럼 버티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마음속으로 안티노오스의 최후를 생각했다.

잠시 뒤 오디세우스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티노오스여, 가난한 사람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음식을 청했을 뿐인데

그대는 나를 때렸소.

만일 세상에 정의를 지키는 신들이 있다면 그대가 바라던 결혼식보다

죽음이 먼저 찾아올 것이오.”

궁전 안의 다른 구혼자들조차 안티노오스의 행동을 비난했다.

“낯선 사람을 함부로 때리는 것은 옳지 않소.

신들이 때로는 낯선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인간 세상을 찾아와 누가 법을 지키고

누가 오만한지 살펴본다는 사실을 잊었소?”

그러나 안티노오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술잔을 들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보고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당장 무기를 들고 안티노오스에게 달려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눈물도 분노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버지와 약속한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모욕을 견디고 있었다.

아들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를 견뎌야 했다.

복수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무기는 칼이나 창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인내였다.

 

페넬로페, 낯선 거지를 만나려 하다

안티노오스가 낯선 거지를 때렸다는 사실은 곧 페넬로페에게 전해졌다.

페넬로페는 크게 분노했다.

“안티노오스에게도 저 낯선 사람을 때린 것과 같은 고통이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활의 신 아폴론께서 오늘 안티노오스를 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에우마이오스를 불러 말했다.

“저 낯선 사람을 내게 데려오십시오.

그가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면 오디세우스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의 모습을 직접 보았거나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왕비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마음이 움직이실 것입니다.

제가 사흘 동안 오두막에 머물게 하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의 말은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오디세우스께서 살아 있으며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페넬로페의 눈빛이 흔들렸다.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남편의 소식을 안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보상을 받으려고 꾸며 낸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페넬로페는 이번 이야기마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해가 지고 구혼자들이 돌아간 뒤 조용히 만나겠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는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궁전 안에 있었다.

몇 걸음만 옮기면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남편의 이름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거짓 신분 뒤에 자신을 감추고 기다려야 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귀환

날이 저물자 에우마이오스는 돼지우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텔레마코스는 충직한 하인에게 다음 날 아침 다시 오라고 부탁했다.

에우마이오스는 낯선 거지에게 조심하라는 눈길을 보낸 뒤 궁전을 떠났다.

오디세우스는 문지방 곁에 앉아 궁전 안을 바라보았다.

구혼자들은 그의 소와 양을 먹고 그의 포도주를 마셨다.

배신한 하인들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고, 충직한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 침묵했다.

아내 페넬로페는 가까운 곳에서 여전히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왕은 돌아왔지만 누구도 왕의 귀환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생명만은 그를 알아보았다.

늙은 개 아르고스였다.

아르고스는 주인에게 달려가지도 못했고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그저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며 마지막 눈길을 보냈을 뿐이었다.

오디세우스도 그의 이름을 부르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했다.

두 존재의 재회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 짧은 눈 맞춤에는 20년의 기다림과 충성, 상실과 귀환이 모두 담겨 있었다.

 

제17회의 핵심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궁전에 들어왔지만 왕이 아니라 늙은 거지로

문지방에 앉아야 했다.

그는 배신한 하인 멜란티오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안티노오스가 던진 발판에 맞는다.

자신이 세운 집에서 자신의 재산을 빼앗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가장

깊은 모욕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분노에 끌려가지 않는다.

심판을 완성할 때까지 자신을 감추며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살폈을 뿐이다.

이번 회에서 가장 먼저 오디세우스를 알아본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늙은 개 아르고스다.

사람의 눈은 옷과 신분, 늙은 얼굴에 속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마음으로 기억한 존재는 겉모습이 달라져도 사랑하는 이를 알아본다.

아르고스에게 주인의 귀환은 기다림의 끝이었다.

그는 오디세우스를 다시 본 뒤에야 비로소 편안히 눈을 감았다.

때로 가장 깊은 충성은 큰 목소리로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모습이다.

 

다음 제18회 예고

제18회|거지들의 싸움과 페넬로페의 등장

궁전에서 구걸하던 오디세우스 앞에 이타케의 또 다른 거지 이로스가 나타나

싸움을 걸어온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하면서도 단 한 번의 주먹으로

그를 쓰러뜨린다.

오디세우스는 비교적 온건한 구혼자 암피노모스에게 다가오는 파멸을 경고한다.

그러나 아테네가 정한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한편 아테네는 페넬로페에게 더욱 눈부신 아름다움을 내려 준다.

구혼자들 앞에 나타난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떠나며 남겼던 말을 들려주고,

자신에게 구혼하려면 마땅히 선물을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구혼자들은 앞다투어 옷과 황금과 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궁전의 배신한 시녀 멜란토가 오디세우스를 모욕하고, 에우뤼마코스마저

발판을 던지며 위협한다.

발판은 몸을 피한 오디세우스를 비켜 가 술 시중꾼을 쓰러뜨린다.

 

참고 또 참는 오디세우스의 마음속에서 마침내 심판의 시간이 가까워진다.

작성자 newsly 작성일 26-09-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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