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하면 프로방스 지방의 밝은 빛과 생동감 있는 색채가 먼저 떠오른다. 아를도 예외는 아니다. 아를은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연중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곳 중 하나다. 특히 여름철에는 햇빛이 매우 강렬하다, 나는 여름이 아닌 4월의 봄날에 아를에 와서 그런지 잿빛 하늘에 날씨가 곳에 따라 약간 춥다 더웠다 했다. 하지만 여름으로 갈수록 날씨가 화창하니 사물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 ▲ 관목이나 덤불 사이, 길가 또는 황야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는 제라늄 몰로(Geranium mallow) 또는 말바실베스트리스(Malva sylvestris)로 알려진 접시꽃 아욱(Mallow)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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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건은 색채로서 자기의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작품 활동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이 색채를 더욱 명확하고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이다. 아를의 하늘은 맑고 푸르른 청색을 띤다고 했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잔뜩 흐렸다.
하지만 이 또한 풍경의 배경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날이 좋아져 맑은 하늘과 강렬한 햇빛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아를 강과 결합한 도시는 매우 아름다울 것 이라는 상상만 해도 아름다움에 취해진다. 나아가 이곳에 머물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봄이기에 올리브 나무의 하얀 꽃과 은빛 녹색 잎사귀, 라벤더 밭의 보랏빛 꽃, 유채꽃 밭의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색 물결 등 자연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를의 건물들은 주로 밝은 크림색이나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이 색깔들은 테라코타라고 불리는 지붕의 붉은색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이러한 따뜻한 색조의 건축물은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더욱 빛나는가 하면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 주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에 아를에 도착하여 오래된 거리를 걸어서 2시 8분에 로마 원형 경기장(Arènes d'Arles)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인구래야 5만2,517명이 사는 중소도시의 낯선 거리에 반하여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보면 아를의 로마 시대 유적인 기원전 90년에 건축된 원형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곳 이름으로는 레 앨런 다를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건립 당시 최대 수용인원이 20,000명이나 되었다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를 원형 경기장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치세 당시에 건축되었다. 당시에는 검투사 시합, 동물 사냥, 공개 처형 등 다양한 잔혹한 행사들이 개최되었으며, 로마 시대 아를 시민들의 오락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 곳이다. 5세기 말에는 서고트족의 침략으로 인해 경기장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중세 시대에는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 경기장은 뛰어난 건축 기술과 예술적 가치로 인해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가 갔던 날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주위는 한적하기만 했다.
이 원형경기장을 중심으로 구불구불한 구 시가지를 서둘러 돌아본 후 2시 23분에 라 카라벨 (La Caravelle) 이라는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오찬을 했다. 오찬은 남프랑스에서 자란 샐러드와 빵 그리고 기름에 붉은 쌀밥이었다. 소박했지만 남프랑스 아를의 구시가지 그것도 옛날건물 그대로인 식당에서 먹는 오찬이기에 이색적인 분위기에 취하여 맛있게 먹었다.
바로 식당 앞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돌아가면 빈센트 고흐가 "론 강가에서 별을 헤는 그림"을 그렸다는 그 유명한 론강이 굽이쳐 흐른다. 한니발 장군이 수년 동안 아를시를 포위하고 공격하며 끈기를 보였던 곳이기도 하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에 알프스를 넘는 대담한 작전을 통해 이탈리아 반도에 진입한 후, 여러 차례 로마군을 패배시켰다. 그 후 로마는 신중한 전략을 취하면서 한니발의 군대를 지치게 하려 했지만, 한니발은 이를 피해 여러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다.
포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임명된 후, 한니발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지연 전술을 통해 적군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때문에 그는 "쿠엔크타토르"(지연하는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포비우스의 전략은 로마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으나, 그의 목표는 로마의 병력을 보존하고 한니발 군대를 서서히 지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비우스의 소극적인 전략에 불만을 가진 로마는 더 적극적인 접근을 취하기로 하고, 집정관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Lucius Aemilius Paullus)와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Gaius Terentius Varro)에게 군대를 맡겨 한니발과 결전을 벌인다.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은 약 8만 명에서 9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모아 한니발의 군대를 압도하려 했다. 그러나 한니발은 이 전투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포위 전술을 사용하여 로마군을 괴멸시켰다.
| ▲ 로마시대 목욕탕으로 쓰인 건물 우측에 론강이 흐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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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은 중앙에 약한 병력을 배치하여 로마군이 돌파하게 한 후, 양 날개에서 기병과 보병이 로마군을 포위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이 결과, 로마군은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겪었고, 약 5만에서 7만 명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이는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한니발의 전술적 천재성을 입증한 전투로 남아 있다. 칸나에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로마군은 아를시에 대한 포위를 풀 수밖에 없었다. 아를은 이처럼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예술적 성장과 정신적 고뇌가 극명하게 대조된 시절을 아를에서 보냈다.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약 1년 3개월 동안 그는 아를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생생한 자연과 풍경을 담은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 ▲ 반 고흐는 생전에 노란색의 해바라기 그림을 많이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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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밤하늘의 별' 등 약 200점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그의 예술적 창작 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로, 많은 유명한 작품이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심각한 불안과 갈등에 시달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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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색 천막아래가 고흐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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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지붕의 카페는 고흐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다. 그 카페의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곳이다. 주위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꽃향기 가득한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올드 거리를 시로 표현해 보았다.
아를의 올드거리
황금빛 햇살이 머무는 곳,
고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거리.
돌담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속삭이고,
좁은 골목길은 옛 시대의 정취를 간직한 채 숨을 쉰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흠뻑 빠져본다.
빨간색 기와지붕, 푸른 창문, 노란의자
꽃이 만발한 화단, 그리고 햇살 아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이곳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 ▲ 동행한 국민은행 변00이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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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고흐는 "론 강가에서 별을 헤는 그림"을 1889년에 그렸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이 그림은 밤하늘 아래 흐르는 론 강과 작은 마을, 그리고 밝은 별들이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 ▲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은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의 론 강가에서 그린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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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그림의 배경을 되새겨보면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 풍경만을 화폭에 담은 것이 아니라 고흐의 깊은 감정과 내면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 그림 앞에서면 고흐의 예술적 재능과 그의 깊은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읽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 ▲ 고흐가 "론 강가에서 별을 헤는 그림"을 그렸다던 바로 그 강, 론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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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는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한 향수와 낯설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전혀 모르는 곳에 대해 향수병을 앓는다.” 고 말했는데 나는 고희를 넘긴 나이면서도 전혀 모르는 것에 굶주려 또 다른 곳을 찾는다.
아를에서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프랑스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2021년 기준으로 도시 인구는 87만 명에 달하며 프랑스 지중해 연안과 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 지역의 거대 항구 도시 마르세유(Marseille)로 출발했다.
| ▲ 지도상 파란색 표시가 바르셀로나에서 마르세유까지의 2박3일의 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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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흐가 활동했던 남프랑스 아를에 가다-Newsly - https://www.newsly.co.kr/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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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하면 프로방스 지방의 밝은 빛과 생동감 있는 색채가 먼저 떠오른다. 아를도 예외는 아니다. 아를은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연중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곳 중 하나다. 특히 여름철에는 햇빛이 매우 강렬하다, 나는 여름이 아닌 4월의 봄날에 아를에 와서 그런지 잿빛 하늘에 날씨가 곳에 따라 약간 춥다 더웠다 했다. 하지만 여름으로 갈수록 날씨가 화창하니 사물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은 색채로서 자기의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작품 활동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이 색채를 더욱 명확하고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이다. 아를의 하늘은 맑고 푸르른 청색을 띤다고 했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잔뜩 흐렸다.
하지만 이 또한 풍경의 배경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날이 좋아져 맑은 하늘과 강렬한 햇빛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아를 강과 결합한 도시는 매우 아름다울 것 이라는 상상만 해도 아름다움에 취해진다. 나아가 이곳에 머물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봄이기에 올리브 나무의 하얀 꽃과 은빛 녹색 잎사귀, 라벤더 밭의 보랏빛 꽃, 유채꽃 밭의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색 물결 등 자연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를의 건물들은 주로 밝은 크림색이나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이 색깔들은 테라코타라고 불리는 지붕의 붉은색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이러한 따뜻한 색조의 건축물은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더욱 빛나는가 하면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 주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에 아를에 도착하여 오래된 거리를 걸어서 2시 8분에 로마 원형 경기장(Arènes d'Arles)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인구래야 5만2,517명이 사는 중소도시의 낯선 거리에 반하여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보면 아를의 로마 시대 유적인 기원전 90년에 건축된 원형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곳 이름으로는 레 앨런 다를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건립 당시 최대 수용인원이 20,000명이나 되었다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를 원형 경기장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치세 당시에 건축되었다. 당시에는 검투사 시합, 동물 사냥, 공개 처형 등 다양한 잔혹한 행사들이 개최되었으며, 로마 시대 아를 시민들의 오락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 곳이다. 5세기 말에는 서고트족의 침략으로 인해 경기장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중세 시대에는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 경기장은 뛰어난 건축 기술과 예술적 가치로 인해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가 갔던 날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주위는 한적하기만 했다.
이 원형경기장을 중심으로 구불구불한 구 시가지를 서둘러 돌아본 후 2시 23분에 라 카라벨 (La Caravelle) 이라는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오찬을 했다. 오찬은 남프랑스에서 자란 샐러드와 빵 그리고 기름에 붉은 쌀밥이었다. 소박했지만 남프랑스 아를의 구시가지 그것도 옛날건물 그대로인 식당에서 먹는 오찬이기에 이색적인 분위기에 취하여 맛있게 먹었다.
바로 식당 앞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돌아가면 빈센트 고흐가 "론 강가에서 별을 헤는 그림"을 그렸다는 그 유명한 론강이 굽이쳐 흐른다. 한니발 장군이 수년 동안 아를시를 포위하고 공격하며 끈기를 보였던 곳이기도 하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에 알프스를 넘는 대담한 작전을 통해 이탈리아 반도에 진입한 후, 여러 차례 로마군을 패배시켰다. 그 후 로마는 신중한 전략을 취하면서 한니발의 군대를 지치게 하려 했지만, 한니발은 이를 피해 여러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다.
포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임명된 후, 한니발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지연 전술을 통해 적군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때문에 그는 "쿠엔크타토르"(지연하는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포비우스의 전략은 로마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으나, 그의 목표는 로마의 병력을 보존하고 한니발 군대를 서서히 지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비우스의 소극적인 전략에 불만을 가진 로마는 더 적극적인 접근을 취하기로 하고, 집정관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Lucius Aemilius Paullus)와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Gaius Terentius Varro)에게 군대를 맡겨 한니발과 결전을 벌인다.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은 약 8만 명에서 9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모아 한니발의 군대를 압도하려 했다. 그러나 한니발은 이 전투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포위 전술을 사용하여 로마군을 괴멸시켰다.
한니발은 중앙에 약한 병력을 배치하여 로마군이 돌파하게 한 후, 양 날개에서 기병과 보병이 로마군을 포위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이 결과, 로마군은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겪었고, 약 5만에서 7만 명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이는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한니발의 전술적 천재성을 입증한 전투로 남아 있다. 칸나에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로마군은 아를시에 대한 포위를 풀 수밖에 없었다. 아를은 이처럼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예술적 성장과 정신적 고뇌가 극명하게 대조된 시절을 아를에서 보냈다.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약 1년 3개월 동안 그는 아를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생생한 자연과 풍경을 담은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당시 그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밤하늘의 별' 등 약 200점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그의 예술적 창작 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로, 많은 유명한 작품이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심각한 불안과 갈등에 시달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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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지붕의 카페는 고흐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다. 그 카페의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곳이다. 주위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꽃향기 가득한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올드 거리를 시로 표현해 보았다.
아를의 올드거리
황금빛 햇살이 머무는 곳,
고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거리.
돌담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속삭이고,
좁은 골목길은 옛 시대의 정취를 간직한 채 숨을 쉰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흠뻑 빠져본다.
빨간색 기와지붕, 푸른 창문, 노란의자
꽃이 만발한 화단, 그리고 햇살 아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이곳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빈센트 고흐는 "론 강가에서 별을 헤는 그림"을 1889년에 그렸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이 그림은 밤하늘 아래 흐르는 론 강과 작은 마을, 그리고 밝은 별들이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배경을 되새겨보면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 풍경만을 화폭에 담은 것이 아니라 고흐의 깊은 감정과 내면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 그림 앞에서면 고흐의 예술적 재능과 그의 깊은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읽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미국의 소설가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는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한 향수와 낯설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전혀 모르는 곳에 대해 향수병을 앓는다.” 고 말했는데 나는 고희를 넘긴 나이면서도 전혀 모르는 것에 굶주려 또 다른 곳을 찾는다.
아를에서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프랑스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2021년 기준으로 도시 인구는 87만 명에 달하며 프랑스 지중해 연안과 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 지역의 거대 항구 도시 마르세유(Marseille)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