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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람들 만수산 무량사, 만수천 물소리에 씻어낸 일상의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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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니 채워지고, 멈추니 비로소 흐르는 것이 보였다. 무량사, 그 끝없는 자비의 품 안에서 나는 오늘 하루, 진정한 청춘으로 살았다.“

 

만수산의 품으로 드는 길

초여름의 기운이 완연한 4월의 마지막 날, 포운 정재권 시인님의 따뜻한 초청으로 만수복지원에 발걸음을 한 것은 뜻밖의 축복이었다. 시심(詩心) 깊은 이들과 나눈 오찬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 나는 이끌리듯 만수산 무량사(無量寺)의 일주문 앞에 섰다. 만수(萬壽)라는 산의 이름과 '무량(無量)'이라는 절의 이름이 만나는 곳. 그곳은 이미 인간의 유한한 시간을 넘어선 영원의 공간처럼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세심(洗心), 만수천의 물소리에 득도를 하다

일주문을 지나 극락전으로 향하는 길목,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만수천의 물소리였다. 깊은 계곡에서 발원하여 구곡(九曲)을 굽이쳐 내려오는 그 물줄기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바위틈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줄기는 세속의 먼지로 얼룩진 내 영혼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법문(法文)과도 같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물을 보고 소리를 들었다. 눈앞의 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그 소리는 변함없이 내 귓가를 울린다. 찰나와 영겁이 교차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나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몰아(沒我)의 경지에 도달했다. 어지러운 잡념이 씻겨 내려간 자리엔 오직 투명한 고요만이 남았다. 어쩌면 수행자들이 평생을 걸쳐 닿고자 했던 '득도(得道)'의 순간이 바로 이런 맑은 쉼표 하나에 있지 않을까? 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세심)'의 참 의미를 나는 그 길 위에서 온몸으로 체득했다.

 

침묵의 수행, 천왕문에서 극락전까지

물소리로 마음을 씻고 나니, 천왕문으로 향하는 길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차원으로 다가왔다. 위엄 있는 사천왕의 눈길조차 두려움보다는 내면을 살피라는 자비로운 경책으로 읽혔다. 천왕문을 지나는 그 짧은 보행은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일상의 소란함과 번잡한 욕망을 문밖에 부려놓고,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성소(聖所)로의 진입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극락전은 보물 제356호라는 국가적 가치를 넘어, 존재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위로였다. 2층의 웅장한 외관 속에 시원스럽게 트인 통층의 공간은 마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부처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그 안에서 마주한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의 온화한 미소는 방금 전 만수천에서 씻어낸 나의 평안을 단단히 인칠(印漆)해 주었다.

 

설잠(雪岑) 김시습, 그 고결한 영혼의 마침표

무량사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으니, 바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 선생이다. 세상을 등지고 방랑하던 천재 유학자이자 설잠스님이라 불렸던 그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곳이 바로 여기 무량사가 아니던가!

 

권력의 무상함을 뒤로하고 이 깊은 산사에 몸을 맡겼던 선생의 고독한 영혼을 생각한다. 선생께서도 내가 서 있던 저 만수천 가에 서서 흐르는 물에 자신의 울분을 씻어내셨을 것이다. 일주문의 단단한 현판 글씨와 극락전의 유서 깊은 처마 끝에서 선생의 꼿꼿한 절개와 문학적 향취가 여전히 배어 나오는 듯하다. 무량사는 단순한 고찰(古刹)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성이 자신의 마지막 숨결을 의탁한 안식처요, 성지인 것이다.

 

맺음말: 고요를 품고 다시 세상으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사진 속의 맑은 하늘은 산사의 단청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았다. 하지만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내 마음속에 새겨진 고요의 문장들이다.

만수복지원에서의 충남 원로자문회의 시군 회장님들과의 따뜻한 인연, 만수천의 득도와도 같았던 물소리, 그리고 김시습 선생의 영혼이 깃든 무량사의 사적 공간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의 어지러운 마음을 맑게 걸러주었다.

 

이제 나는 일상의 소란함 속으로 다시 돌아가지만, 내 안에는 만수산의 물소리가 흐르는 작은 개울 하나가 생겼다. 지치고 힘든 날이면 언제든 마음속 무량사로 향하는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무량사에 가면 문화가 보이고 역사가 보입니다.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제185)

극락전 앞마당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이 탑은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백제의 옛 땅에 세워진 만큼 백제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구조적 특징: 낮은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지붕돌의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어 육중한 돌탑임에도 경쾌한 상승감을 줍니다.

 

발견된 유물: 1971년 해체 복원 당시, 탑 내부에서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삼존불상이 발견되어 이 탑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부처님의 사리와 가르침을 모신 신성한 공간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보물 제1565)

극락전 내부를 가득 채운 이 삼존불은 조선 인조 11(1633)에 만들어진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걸작입니다.

 

구성: 중앙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자비의 관세음보살, 오른쪽에는 지혜의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예술적 가치: 진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건장한 체구와 당당한 어깨, 그리고 무엇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자한 미소는 무량사를 찾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당대 최고의 조각승이었던 현진(玄眞) 스님의 솜씨가 깃들어 있어 형태의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작성자 newsly 작성일 26-05-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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