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365일, 인생을 빛낸 한마디] 10월 10일 오늘은 벤 존슨, 예술의 가장 큰 적은 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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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사람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 10월 10일에 만날 인물은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자·극작가이며 ·비평가인 벤 존슨(Ben Jonson, 1572~1637)입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는 풍자희극의 대가이자 고전적 질서와 정확한 언어를 중시한 문인이었습니다. 볼포네, 연금술사, 인간은 누구나 제 기질대로등의 작품을 통해 탐욕과 허영, 인간의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비추었습니다. 영국 문학사에서 그는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중요한 르네상스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오늘 마음에 새길 그의 말은 이것입니다.
“예술에는 ‘무지’라는 적이 있다.(Art hath an enemy called Ignorance.)”
이 문장은 벤 존슨의 희극 “Every Man Out of His Humour” 서막에 실제로 등장합니다.
예술의 적이 왜 ‘무지’인가?
존슨이 말한 무지는 단순히 글자를 모르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좋은 작품을 보면서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태도,
작품의 맥락을 알지 못한 채 쉽게 평가하는 태도,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태도까지 포함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아무런 준비 없이도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알고 바라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입니다.
그림 한 점을 보더라도 화가가 살았던 시대를 알고, 음악 한 곡을 들으면서 작곡가의 삶과 작품의 배경을 알면 감동의 깊이는 달라집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는 예술을 없애는 적이라기보다, 예술 앞에서 우리의 눈과 귀를 닫게 만드는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예술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벤 존슨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을 깊이 공부한 작가였습니다.
호라티우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전 작가들의 문학적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작품을 쓰면서도 구성과 언어, 형식을 세심하게 다듬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후대 영국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순간적인 영감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능 + 공부 + 훈련 + 절제가 함께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많이 읽어야 하고,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면 빛을 관찰해야 하며,
좋은 음악을 연주하려면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재능은 출발점이지만, 공부와 훈련이 그것을 작품으로 만듭니다.
셰익스피어를 경쟁자가 아니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하다
존슨과 셰익스피어는 동시대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비교와 경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뒤 존슨은 그를 기리는 유명한 시를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까지 널리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He was not of an age, but for all time.”
“그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었다.”
자기와 경쟁했던 동시대 작가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특정 시대를 넘어 살아남으리라는 존슨의 통찰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두려워하기보다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웃음으로 인간의 욕망을 비추다
존슨의 대표작 “볼포네(Volpone)”에는 돈과 유산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등장합니다.
?연금술사(The Alchemist)“에서는 인간의 욕심과 속임수를 희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독자는 웃지만, 웃고 난 뒤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에게도 저런 욕심은 없는가?”
“나 역시 허영과 돈 때문에 사람을 잘못 판단하지 않는가?”
좋은 풍자는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웃다가 문득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래서 존슨에게 희극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거울이었습니다.
‘음악은 보편적 언어’라는 말도 함께 생각해 본다면
음악에는 번역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한국인이 모차르트를 듣고,
프랑스인이 우리 가락을 들으며,
서로 언어를 몰라도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술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연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벤 존슨은 누구인가?
벤 존슨은 1572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스쿨에서 고전교육을 받았고, 한때 벽돌공과 군인으로 생활한 뒤 배우와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598년 “Every Man in His Humour”가 무대에 올랐는데, 이 공연에는 셰익스피어도 배우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볼포네”1606, “연금술사.1610”, ”바솔로뮤 페어,1614“ 등의 걸작을 남겼습니다.
1616년에는 자신의 희곡과 시를 묶어 Works라는 이름으로 출판했습니다. 당시 희곡을 단순한 공연 대본이 아니라 당당한 ‘문학 작품’으로 취급한 것은 상당히 대담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무렵 그는 왕실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사실상 계관시인과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1637년 세상을 떠난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Every Man in His Humour: 인간을 지배하는 기질과 집착을 풍자한 희극“
”볼포네(Volpone): 돈과 유산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을 그린 대표작.“
”연금술사(The Alchemist), 욕망을 이용해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들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작품.“
”바솔로뮤 페어(Bartholomew Fair), 장터를 무대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과 위선을 펼쳐 보인 희극입니다.“
오늘의 메시지
벤 존슨의 “예술에는 무지라는 적이 있다.”
라는 말은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충고가 아닙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면서 쉽게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않고 평가하고,
사람의 사정을 모르면서 그 사람을 판단하며,
다른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채 틀렸다고 말합니다.
무지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읽고, 조금 더 듣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게 됩니다.
진정한 교양은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고,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태도에 있습니다.
뉴슬리 독자에게 전하는 짧은 성찰
오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잘 알지 못하면서 쉽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나는 모르겠다.”며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한 편의 시,
한 곡의 음악,
한 폭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우리 삶을 당장 바꾸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조금씩 넓어집니다.
오늘의 한마디
“예술에는 ‘무지’라는 적이 있다.”
Art hath an enemy called Ignorance.
그리고 오늘의 삶의 언어로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지 말라.
배우고 바라볼수록 세상은 더 깊고 아름다워진다.”
10월 10일, 벤 존슨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오늘 모르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가, 아니면 한 걸음 더 배우려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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