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뉴슬리 문학 칼럼] 사랑의 품에서, 욕망의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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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윤 전 단국대 법정대학장, 한국지방자치발전연구원 원장, 정치학 박사 © |
스탕달 『적과 흑』, 쥘리앵 소렐의 두 마음
사랑은 어느 날 조용히 찾아와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평범하던 얼굴이 눈부시게 보이고, 무심히 지나치던 목소리가 오래 귓가에 머문다. 그러나 그 설렘 속에는 때로 다른 꿈도 섞여 있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지금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스탕달의 『적과 흑』 속 쥘리앵 소렐 역시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 두 마음이 끝없이 지신을 흔든다.
세상의 문턱에서 만난 다정한 손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쥘리앵은 가난했지만, 마음속 꿈만큼은 대망을 간직했다. 책을 읽고 나폴레옹을 동경하며, 언젠가는 자신을 낮춰 보던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바랐다. 그의 높은 자존심 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외로운 마음이 스며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레날 시장 집의 가정교사가 된다. 그에게 레날 부인의 다정함은 낯선 햇살처럼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녀의 손을 잡는 일조차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는 작은 싸움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랑은 그가 세워놓은 계획대로만 흐르지 않는다. 함께 걷는 시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말없이 건네는 배려가 그의 마음을 조금씩 봄날의 눈 녹듯 녹인다.
누군가를 이겼다는 기쁨보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행복이 더 따뜻하다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배우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얼굴 너머로 빛나는 꿈
파리에서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된 쥘리앵은 후작의 딸 마틸드와 사랑에 빠진다. 마틸드는 귀족 사회의 익숙한 청년들과 다른 그의 대담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쥘리앵 역시 그녀에게 끌린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너머에는 자신이 오래 꿈꾸어온 화려한 세계도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마음을 순순히 내어주지 못한다. 다가갔다가 물러서고, 사랑을 기다리면서도 먼저 고백하기를 망설인다.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은 순간에 자존심이 앞서고,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 곁에 상대보다 약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따라붙는다.
마틸드에게 그는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남자이고, 쥘리앵에게 그녀는 사랑하는 여인이면서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문요, 열쇠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설렘과 함께, 서로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흐른다.
모든 빛이 사라진 뒤 남은 사랑
마틸드의 임신으로 결혼과 출세가 가까워졌을 때, 레날 부인의 편지가 쥘리앵의 앞길을 막는다. 고해신부의 영향 아래 쓰인 편지는 그를 야심에 사로잡힌 유혹자로 묘사한다. 격분한 그는 성당으로 찾아가 레날 부인에게 총을 쏜다.
그 순간, 상처받은 자존심은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 된다. 사랑했던 사이라는 이유로 그 잘못이 가벼워질 수는 없다.
살아남은 레날 부인이 감방에 있는 그를 찾아왔을 때, 쥘리앵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 지위도 명예도 멀어진 자리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순간인지를 깨닫는다. 세상의 눈에 높아지고 싶었던 마음이 가라앉자, 한 사람 곁에서 누리던 행복이 선명해진다.
사랑은 이미 그의 삶에 와 있었지만, 그는 너무 먼 곳을 바라보느라 그 따뜻함을 충분히 품지 못했던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
쥘리앵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 마음에도 조용히 닿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꿈이 커질수록, 함께 꿈꾸는 사람의 얼굴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잠시 내려놓고 바라보면 어떨까? 웃을 때의 표정, 지친 날의 한숨, 나를 위해 남겨둔 작은 배려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사랑의 깊이는 그런 평범한 순간에 조금씩 쌓인다.
쥘리앵은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자신에게 소중했던 마음을 알아본다. 우리는 그보다 조금 일찍, 아니 더 늦기 전에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다정하게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더 높이 올라가려 애쓰던 마음을 잠시 쉬게 하고, 함께 있는 오늘의 기쁨을 충분히 누려보자. 어쩌면 행복의 열쇠는 우리가 맞잡은 그 따뜻한 손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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