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호메르스의 대서사시:오디세이 연재, 마지막회]“이제 싸움을 멈추어라”(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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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마지막 창이 날아간 순간, 신들은 증오의 기억을 거두고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완성한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모든 가족과 다시 만났다.
아내 페넬로페는 움직일 수 없는 침대의 비밀로 남편을 알아보았고,
늙은 아버지 라에르테스는 오래전 아들에게 선물했던 과수원의 나무들을 기억했다.
오디세우스와 라에르테스, 텔레마코스까지 오디세우스 가문의 세 세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평화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무기를 들고 라에르테스의 농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아들과 형제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원했다.
구혼자들이 오디세우스의 집을 짓밟았고 텔레마코스의 목숨까지 노렸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오디세우스 역시 가족을 죽인 원수일 뿐이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피는 다시 피를 요구했다.
그 끝없는 사슬을 누가 끊을 것인가?
오디세우스의 마지막 싸움은 괴물이나 폭풍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분노와 증오를 멈추는 싸움이었다.
복수를 위해 과수원으로 향한 사람들
안티노오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는 구혼자들의 가족과 친척들을 이끌고
라에르테스의 농장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안티노오스는 구혼자들의 우두머리였다.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가장 거리낌 없이 탕진했고, 텔레마코스를 죽일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에우페이테스에게 안티노오스는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이 저지른 잘못보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생각했다.
“오디세우스가 우리 아들들을 죽였다.
우리가 지금 복수하지 않는다면 이타케 사람들은 우리를 겁쟁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에우페이테스는 무장한 사람들의 맨 앞에 섰다.
창과 방패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무거운 발소리가 땅을 울렸고, 과수원의 평온한 공기 속으로 전쟁의 기운이 밀려들었다.
그들 가운데는 분명 구혼자들의 잘못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늙은 예언자 할리테르세스는 이미 구혼자들이 신들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전령 메돈도 오디세우스 곁에 신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 말을 들은 일부 사람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슬픔에 사로잡힌 이들은 충고를 듣지 않았다.
아이기스토스가 헤르메스의 경고를 무시했듯, 구혼자들이 수많은 예언과 징조를 외면했듯, 그들의 가족들 역시 분노에 눈이 멀어 자신들을 말리는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들은 복수가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또 다른 죽음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올림포스에서 내려다본 마지막 위기
한편 올림포스의 신들도 이타케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아버지 제우스에게 물었다.
“아버지 제우스여, 이제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디세우스와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다시 싸우게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들 사이에 평화를 세우시겠습니까?”
제우스가 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 딸아,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것은 네가 아니더냐.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와 구혼자들을 벌하도록 이끈 것도 너였다.
그러니 마지막 일 역시 네가 뜻한 대로 하여라.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제는 싸움을 끝내는 것이 옳다.
오디세우스가 다시 이타케를 다스리게 하여라.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분노와 복수심을 내려놓게 하고,
서로 화해의 맹세를 나누게 하여라.
그리하여 이타케에 다시 평화와 번영이 찾아오게 하여라.”
제우스의 뜻은 분명했다.
구혼자들의 죄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벌이 새로운 원한과 살육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었다.
정의가 복수로 변하는 순간, 사람들은 또 다른 불의를 저지르게 된다.
이제 신들이 해야 할 일은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쓰러뜨리는지 지켜보는 것이 아니었다.
복수의 끝을 선언하고 사람들이 다시 함께 살아갈 길을 여는 것이었다.
아테네는 올림포스의 높은 봉우리에서 빠르게 내려왔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의 모습을 하고 라에르테스의 농장으로 향했다.
세 세대가 함께 무기를 들다
농장 안에서 식사를 하던 오디세우스와 사람들은 무장한 무리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돌리오스의 아들 하나가 급히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그는 창과 방패를 든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주인님, 무장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미 아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을 들었다.
텔레마코스도 아버지 곁에 섰다.
충직한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
늙은 돌리오스와 그의 여섯 아들도 무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라에르테스가 일어섰다.
그는 오랜 세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농장에서 살아왔다.
몸은 늙었고 한동안 무기조차 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살아 돌아온 아들과 성장한 손자를 지키기 위해 다시 창을 들었다.
오디세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라에르테스는 자신에게 생명과 고향을 물려준 사람이었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이어 갈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처럼 나란히 섰다.
그때 멘토르의 모습을 한 아테네가 농장으로 다가왔다.
오디세우스는 그녀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텔레마코스에게 말했다.
“아들아, 이제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줄 때가 왔다.
우리 가문은 오래전부터 용기와 명예를 지켜 왔다.
오늘 싸움에서 조상들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십시오.
저는 이제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가문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라에르테스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신들이여,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이 또 있겠습니까.
내 아들과 손자가 서로 누가 더 용감한지를 다투고 있습니다.
살아서 이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텔레마코스의 항해가 완성된 순간
텔레마코스의 말은 제1회에서 보았던 소년의 모습과 크게 달랐다.
그때 그는 구혼자들 사이에 앉아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재산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테네는 그런 텔레마코스에게 처음으로 일어서라고 말했다.
이타케 사람들을 회의에 불러 모으고, 구혼자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며,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바다로 나가라고 했다.
텔레마코스는 필로스와 스파르타를 여행했다.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를 만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타케로 돌아온 뒤에는 거지로 변장한 아버지와 함께 구혼자들을 상대했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할아버지와 아버지 곁에 서서 다시 창을 들고 있었다.
텔레마코스의 항해는 단순히 바다를 건너 아버지의 소식을 찾는 여행이 아니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성장의 여행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되찾는 동안 텔레마코스는 자기 자신을 찾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오디세우스의 어린 아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테네가 라에르테스에게 불어넣은 힘
멘토르의 모습으로 서 있던 아테네가 라에르테스에게 다가갔다.
“아르케이시오스의 아들 라에르테스여, 이제 제우스와 아테네에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적의 대열을 향해 창을 던지십시오.”
아테네는 라에르테스의 몸에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늙은 왕의 눈빛이 젊은 시절처럼 빛났다.
창을 쥔 손에도 다시 힘이 들어갔다.
라에르테스는 제우스와 아테네에게 기도한 뒤 긴 창을 들어 올렸다.
복수의 무리를 이끌고 오던 에우페이테스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안티노오스의 아버지와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두 사람 모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한 사람은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슬픔 속에서 늙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들의 죽음을 갚겠다며 새로운 싸움을 일으켰다.
라에르테스가 힘껏 창을 던졌다.
창은 에우페이테스의 청동 투구를 뚫고 들어갔다.
그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졌다.
안티노오스가 구혼자 가운데 가장 먼저 오디세우스의 화살에 쓰러졌듯,
그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도 복수의 무리를 이끌다가 가장 먼저 목숨을 잃었다.
아테네에게 힘을 얻은 라에르테스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과 가문을 지킨 순간이었다.
다시 시작된 격렬한 싸움
에우페이테스가 쓰러지자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는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 돌리오스와 그의 아들들도 뒤를 따랐다.
창이 날아가고 방패가 부딪쳤다.
오디세우스는 분노에 차 있었다.
구혼자들은 오랜 세월 자신의 집을 짓밟았다.
이제 그 가족들까지 무기를 들고 아버지의 농장으로 찾아왔다.
그는 적들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싸울 기세였다.
텔레마코스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란히 창을 던지며 자신들의 집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몰아냈다.
복수하러 온 사람들의 대열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우페이테스가 쓰러졌고, 오디세우스의 창은 여전히 두려웠다.
텔레마코스와 충직한 하인들도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들이 계속 싸웠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구혼자들의 가족이 모두 쓰러지고,
그들의 또 다른 친척들이 다시 복수를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들이 창을 들고, 그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또 다른 창을 드는 일이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누가 처음 잘못했는지는 점점 희미해지고, 서로가 흘린 피만 남았을 것이다.
바로 그때 아테네가 두 무리 사이에 섰다.
“이타케 사람들이여, 싸움을 멈추어라”
아테네가 하늘과 땅을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타케 사람들이여, 이제 이 참혹한 싸움을 멈추어라.
더 이상 서로의 피를 흘리지 말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손에서 무기가 떨어졌다.
창과 방패가 땅 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그 목소리가 평범한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구혼자들의 가족들은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분노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달려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격하려 했다.
지난 20년의 고통과 궁전에서 겪은 모욕이 그의 마음속에서 다시 솟아올랐다.
바다 위에서 수많은 동료를 잃었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거지로 조롱받았다.
사랑하는 가족은 오랜 세월 고통받았다.
오디세우스는 모든 원한의 씨앗을 없애고 싶었다.
그 순간 제우스가 하늘에서 벼락을 던졌다.
번개는 아테네 앞 땅에 떨어졌다.
천둥소리가 이타케 전역을 뒤흔들었다.
제우스가 싸움을 끝내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아테네가 오디세우스를 향해 외쳤다.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여, 이제 멈추어라!
모든 것을 바라보시는 제우스의 분노를 부르지 마라.
싸움은 이미 끝났다. 더 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오디세우스는 창을 내렸다.
트로이 전쟁에서 수많은 적과 싸웠고,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살아남았으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까지 견뎌 낸 영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또 한 번의 승리가 아니었다.
멈추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용기였다.
오디세우스는 아테네의 명령에 따랐다.
그가 창을 거두는 순간,
20년 동안 이어진 전쟁과 표류, 기다림과 복수의 시간이 비로소 끝났다.
증오의 기억을 거두어 간 신들
아테네는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분노와 복수심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신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억까지 지운 것은 아니었다.
슬픔은 남았다.
그러나 그 슬픔이 또 다른 살육을 불러오는 증오로 변하지 않도록 했다.
구혼자들의 가족들은 오디세우스와 화해하기로 맹세했다.
더 이상 아들과 형제의 죽음을 갚겠다며 무기를 들지 않기로 했다.
오디세우스 역시 그들에게 새로운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두 편은 제우스와 아테네 앞에서 평화를 맹세했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이타케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의 집과 재산은 제자리를 되찾았고, 구혼자들이 어지럽힌 질서도 바로잡혔다.
밭에서는 다시 곡식이 자라고 과수원의 나무들은 계절마다 열매를 맺었다.
바다로 나간 배들은 무사히 항구로 돌아왔고, 사람들은 전쟁과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페넬로페는 더 이상 구혼자들의 발소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텔레마코스도 아버지가 없는 집을 홀로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났다.
라에르테스는 아들이 살아 돌아온 모습을 보며 남은 생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 같은 충직한 사람들은 마땅한 존중을 받았다.
그들이 오랫동안 지키고 싶었던 집은 단순히 돌과 나무로 세운 궁전이 아니었다.
서로를 믿고 기억하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공동체였다.
포세이돈의 분노도 끝나다
오디세우스의 고난은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자신의 이름을 외친 순간부터 더욱 깊어졌다.
눈을 잃은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기도했다.
오디세우스가 결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운명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면
모든 동료를 잃고 오랜 고난 끝에 남의 배를 타고 귀환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오디세우스는 열두 척의 배와 수많은 동료를 이끌고 트로이를 떠났지만,
홀로 파이아케스의 배를 타고 이타케에 돌아왔다.
귀향한 뒤에도 자신의 집에서 새로운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분노가 오디세우스의 삶을 영원히 지배할 수는 없었다.
신들의 뜻에 따라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가족과 고향을 되찾았다.
제우스와 아테네가 이타케에 평화를 세우면서 폴리페모스가 빌었던 저주의 시간도 끝났다.
포세이돈이 일으킨 바다는 오디세우스를 오랫동안 떠돌게 했다.
하지만 그 바다도 그의 마음속에서 고향을 지우지는 못했다.
오디세우스가 모든 것을 잃고도 끝내 지켜 낸 것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전쟁 영웅에서 한 인간으로 돌아오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날 때 그는 도시를 무너뜨린 영웅이었다.
그는 뛰어난 계략과 용기로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세상에 알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폴리페모스의 동굴을 빠져나온 뒤에도 그는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떠날 수 없었다.
“나의 이름은 오디세우스다.”
그 외침은 영웅의 자존심이었지만, 동시에 긴 고난을 불러온 자만이었다.
그러나 20년의 항해를 마친 오디세우스는 달라졌다.
그는 이름을 드러내는 것보다 때로는 감추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사실을 배웠다.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분노를 참으며 때를 기다리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마지막 싸움에서 그는 다시 창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귀향을 완성한 행동은 적을 쓰러뜨린 일이 아니었다.
아테네의 명령을 듣고 창을 내려놓은 일이었다.
전쟁을 시작하는 데는 분노와 용기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절제와 지혜, 그리고 함께 살아가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오디세우스는 모든 적을 죽였기 때문에 고향을 되찾은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죽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비로소 고향의 사람이 되었다.
페넬로페의 기다림도 끝나다
궁전 안에서 페넬로페는 모든 일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의 가족과 화해했고, 이타케에 다시 평화가 세워졌다는 소식이었다.
그제야 페넬로페의 긴 기다림도 완전히 끝났다.
남편이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일어난다면 오디세우스를 또다시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은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되었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만든 올리브나무 침대가 있는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 침대는 살아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누구도 옮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삶 역시 오랜 세월 흔들리고 갈라질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가장 깊은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페넬로페는 남편과 함께 세운 집을 지키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바다와 세월은 두 사람을 오래 갈라놓았지만, 서로를 향한 기억까지 옮겨 놓지는 못했다.
이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는 잃어버린 20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시간을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두 사람이 얻은 가장 큰 귀향의 선물이었다.
고향은 돌아가는 곳이자 다시 살아가는 곳
오디세우스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타케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향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 그의 귀향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땅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아테네가 안개로 이타케의 모습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감추어야 했다.
아들에게조차 곧바로 정체를 밝히지 못했고, 궁전에서는 거지의 모욕을 견뎌야 했다.
고향은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집은 구혼자들에게 점령당했고, 아내는 오랜 슬픔 속에 살았으며,
아들은 아버지 없이 성장했다.
아버지는 누더기를 입고 과수원에서 홀로 늙어 갔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너진 관계를 하나씩 다시 이어야 했다.
아들에게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혀야 했고,
아내에게는 변하지 않은 사랑을 증명해야 했다.
아버지에게는 어린 시절 함께 걸었던 과수원의 나무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이타케 사람들과 화해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회복해야 했다.
그러므로 귀향은 단순히 떠났던 장소로 돌아오는 일이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맺고, 상처를 보듬으며,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함께 만드는 일이다.
고향은 돌아가는 곳이면서 동시에 다시 살아가기 시작하는 곳이다.
제25회의 핵심
《오디세이》의 마지막 장면을 완성하는 것은 오디세우스의 승리가 아니라
아테네가 명한 평화다.
구혼자들은 자신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이 복수에 나서면서 정의로운 응징은 또 다른 피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기에 놓인다.
이때 제우스와 아테네는 싸움을 멈추게 한다.
오디세우스 역시 끝까지 적을 추격하지 않고 창을 내려놓는다.
진정한 평화는 어느 한쪽이 상대를 완전히 없애 버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더 이상 보복하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함께 살아갈 질서를 다시 세울 때 시작된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괴물과 폭풍을 이겨 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행동은 적을 쓰러뜨린 것이 아니라
분노를 멈춘 일이었다.
20년의 항해가 가르쳐 준 마지막 지혜는 분명하다.
복수는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무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끝난다.
25회 연재를 마치며
《오디세이》는 한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험담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많은 인간의 이야기가 함께 흐른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을 잃고 바다를 떠돈다.
페넬로페는 남편이 없는 집에서 기다림과 지혜로 가정을 지킨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견디며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라에르테스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며 과수원의 나무들을 돌본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는 주인이 없는 동안에도 충성을 버리지 않는다.
나우시카와 파이아케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은 낯선 이를 따뜻하게 맞아들인다.
칼립소와 키르케, 세이렌과 스킬라, 폴리페모스와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가 넘어야 했던 유혹과 두려움, 자만과 고통을 보여 준다.
이 긴 이야기에서 고향은 단순한 섬의 이름이 아니다.
고향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상처 난 몸을 알아보는 유모가 있고, 함께 만든 침대의 비밀을 기억하는 아내가 있으며, 어린 시절 선물한 나무의 수를 기억하는 아버지가 있는 곳이다.
오디세우스는 불멸의 삶보다 늙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
완벽한 낙원보다 거칠고 메마른 이타케를 선택했다.
그곳에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바다를 건넌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폭풍을 만나고, 달콤한 망각의 유혹에 흔들리며,
때로는 자신의 자만으로 더 큰 고난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는다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호메로스가 3천 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삶은 끝없는 항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가는 길을 잃지 않는다면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고향에 닿을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긴 항해는 끝났다.
그러나 고향을 찾아가는 인간의 항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연재를 마치며|우리는 어떤 《오디세이》를 읽었는가?
원전의 길을 따르되, 오늘의 독자가 편안하게 건널 수 있도록
뉴슬리가 연재한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작품을 그대로 옮긴 완역본이 아니다.
약 2,800년 전의 대서사시가 지닌 이야기의 뼈대와 정신을 지키면서,
오늘의 독자가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문학적 재서술본’이다.
따라서 이 연재에는 원전에 있는 모든 행과 표현이 그대로 담겨 있지 않다.
일부 장면은 줄였고, 오래된 표현은 현대적인 우리말로 풀었으며, 인물의 마음과 장면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겪은 사건의 순서와 인물 관계, 신들의 개입, 이야기의 중요한 대화와 결말은 원전의 흐름을 따랐다.
어떤 영어 원전을 바탕으로 했는가?
연재의 주된 바탕은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의 영어 산문 번역본이다.
Homer, The Odyssey, translated by Samuel Butler, 1900
버틀러는 자신의 번역본에 Rendered into English Prose for the Use of Those Who Cannot Read the Original, 곧 ‘그리스어 원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어 산문 번역’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운문보다 사건과 대화의 흐름이 명료하여, 일반 독자를 위한 우리말 재서술의 기본 자료로 삼기에 적합했다. 이 번역은 현재 저작권이 만료되어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인명·지명과 사건의 세부 내용은 다음 번역본과도 대조했다.
Homer, The Odyssey, translated by A. T. Murray, 1919
머리 번역본은 그리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함께 제시한 고전학적 판본이다.
뉴슬리 연재에서는 버틀러 번역을 중심으로 읽되, 표현의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인물의 행동을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머리 번역을 참고했다.
이 판본은 페르세우스 스카이파 뷰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뉴슬리의 우리말 문장은 어느 한 영어판을 문장별로 직역한 것이 아니다.
두 영어 번역을 통해 원전의 뜻과 사건을 확인한 뒤, 한국 독자의 정서와 호흡에 맞게 새롭게 구성했다. 그러므로 연재에 나오는 대화 가운데 따옴표로 표시된 문장도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영어판의 직접 인용이 아니라, 원전의 뜻을 살린 우리말 재서술이다.
원전은 24권인데 왜 25회로 연재했는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모두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권’은 서로 다른 24권의 책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를 나눈 24개의 큰 부분을 가리킨다.
뉴슬리는 애초 원전의 24권을 따라 연재를 기획했다.
그러나 제1권에는 신들의 회의, 아테네의 이타케 방문, 텔레마코스의 각성, 페넬로페와 가객 페미오스의 장면, 구혼자들을 향한 첫 경고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를 한 회에 모두 싣기에는 분량이 지나치게 길었다.
무엇보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년에서 스스로 행동하려는 청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충분히 보여 주기 위해 제1권을 두 차례로 나누었다.
그 결과 원전 24권이 뉴슬리에서는 모두 25회의 연재가 되었다.
이는 새로운 사건을 창작해 더한 것이 아니라, 원전의 첫 번째 이야기를 독자의 호흡에 맞게 나눈 편집상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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