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김성윤의 채근담 지혜 31] 세상에 들어가되 세상에 물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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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뜻을 펼치려는 사람에게는 현실을 살아가는 능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세상 밖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세속을 떠나 맑고 고요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도 세상을 모르면서 무작정 떠나서는 안 된다. 『채근담』은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매이지 않고, 세상을 떠나더라도 세상을 충분히 이해한 뒤 떠나는 것이 참된 삶의 지혜라고 말한다.
■ 원문(原文)과 한글 음독
思入世而有爲者 須先領得世外風光 否則 無以脫垢濁之塵緣
(사입세이유위자 수선영득세외풍광 부즉 무이탈구탁지진연)
思出世而無染者 須先諳盡世中滋味 否則 無以持空寂之苦趣
(사출세이무염자 수선암진세중자미 부즉 무이지공적지고취)
■ 풀어보기
『채근담』은 이번 구절에서 얼핏 서로 반대되는 두 삶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入世(입세), 세상속으로 들어가 뜻을 펼치는 삶이요, 다른 하나는 出世(출세), 세속에서 벗어나 자신을 지키는 삶이다.
그러나 『채근담』이 말하려는 것은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들어가려는 사람에게는 세상 밖을 보는 혜안이 필요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세상 속을 아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지혜다.
첫 구절은 思入世而有爲者(사입세이유위자)이다.
세상에 들어가 무언가 뜻있는 일을 이루려는 사람을 말한다. 정치든 행정이든 교육이든 사업이든, 사회 속에서 자신의 뜻과 능력을 펼치려는 사람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채근담』은 그런 사람일수록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즉 須先領得世外風光(수선영득세외풍광)으로 먼저 세상 밖의 풍광을 깨달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世外風光(세외풍광)은 단순히 산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뜻하지 않는다.
명예와 이익, 경쟁과 욕망에서 한 걸음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초연한 정신의 경지를 가리킨다.
세상 한복판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때때로 세상 밖에 서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위가 높아져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명성을 얻어도 그것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며, 이익을 얻더라도 욕심에 끌려가지 않는 마음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否則 無以脫垢濁之塵緣(부즉 무이탈구탁지진연)으로 그렇지 않으면 때 묻고 흐린 세속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垢濁(구탁)은 때 묻고 혼탁함이며, 塵緣(진연)은 세속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얽힌 인연을 뜻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들어갔다가 오히려 권력과 명예, 이익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처음의 숭고한 뜻은 사라지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기도 한다.
『채근담』은 바로 이점을 경계한다.
세상에서 큰일을 하려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초월해서 바라보는 혜안을 먼저 가져야 한다.
이어지는 구절은 정반대의 사람을 이야기한다.
思出世而無染者(사출세이무염자)로 세속을 벗어나 세상의 욕망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채근담』은 이런 사람에게 곧바로 산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須先諳盡世中滋味(수선암진세중자미)라고 한다. 먼저 세상 속의 온갖 맛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滋味(자미)는 단순한 음식의 맛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명예와 좌절처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인생의 온갖 맛을 뜻한다.
세상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은 허무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깨달음이라기보다 도피일 수도 있다. 부귀를 경험하지 못하고 부귀를 초월했다고 말하기 어렵고, 세상의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 세상을 안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채근담』은 諳盡(암진)이라고 했다.
세상의 맛을 어렴풋이 아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겪고 깊이 이해하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否則 無以持空寂之苦趣(부즉 무이지공적지고취)로
공허하고 적막한 삶의 고독을 견뎌낼 수 없다고 했다.
세속을 떠나는 것은 낭만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박수도 없고 경쟁도 없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도 없다.
그 고요함을 견디려면 세상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난 뒤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채근담』은 우리에게 경험과 초월의 균형을 가르친다.
세상에 들어가려면 세상을 넘어서는 마음을 먼저 배우고,
세상을 떠나려면 세상 속 삶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들어감과 나옴은 서로 반대되는 길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지혜가 필요하다.
■ 오늘의 메시지
우리는 흔히 세속과 초월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현실적이어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현실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채근담』은 두 세계 사이에 벽을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 한복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世外風光(세외풍광)을 요구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권력 밖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돈을 다루는 사람일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하며, 명성을 얻은 사람일수록 명성 없이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세상을 떠나 고요한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世中滋味(세중자미)를 요구한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를 충분히 경험한 뒤 내려놓는 것과 경험하지 못한 채 외면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도 마음이 자유로운가?
세상 밖에서도 삶을 이해하고 있는가?
『채근담』이 묻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세상을 무조건 떠나는 데 있지 않다.
세상을 충분히 알면서도 세상에 끌려가지 않는 데 있다.
■ 오늘의 교훈
세상에서 뜻을 펼치려면 먼저 세상을 초월해 바라보는 눈을 가져라.
명예와 이익 속에 살더라도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 먼저 세상의 기쁨과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라.
참된 초월은 세상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알고도 거기에 매이지 않는 데서 온다.
■ 편집자 주
入世(입세) :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
有爲(유위) : 뜻을 세우고 실제로 어떤 일을 이루어냄.
領得(영득) : 깨달아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음.
世外風光(세외풍광) : 문자 그대로는 ‘세상 밖의 풍광’. 여기서는 명리와 욕망을 초월해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적 경지를 뜻한다.
垢濁(구탁) : 때 묻고 흐림. 세속의 욕망과 이해관계로 마음이 혼탁해진 상태.
塵緣(진연) : 세속에서 맺어지는 여러 인연과 욕망의 얽힘.
出世(출세) : 여기서는 오늘날의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속을 벗어남이라는 고전적 의미다.
無染(무염) : 세속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물들지 않음.
諳盡(암진) : 속속들이 알고 충분히 경험함.
世中滋味(세중자미) : 세상살이에서 겪는 희로애락과 성공·실패 등 인생의 온갖 맛.
空寂(공적) : 텅 비고 고요함. 세속적 번잡함에서 벗어난 고요한 상태.
苦趣(고취) : 고요한 삶에 따르는 고독과 어려움의 맛.
■ 한자 한 글자씩 뜻과 음
1. 思入世而有爲者
思(생각 사) 入(들 입) 世(세상 세) 而(말 이을 이) 有(있을 유) 爲(할 위) 者(놈 자)
→ 사입세이유위자
2. 須先領得世外風光
須(모름지기 수) 先(먼저 선) 領(거느릴 령) 得(얻을 득) 世(세상 세) 外(밖 외) 風(바람 풍) 光(빛 광)
→ 수선영득세외풍광
3. 否則 無以脫垢濁之塵緣
否(아닐 부) 則(곧 즉) 無(없을 무) 以(써 이) 脫(벗을 탈) 垢(때 구) 濁(흐릴 탁) 之(갈 지) 塵(티끌 진) 緣(인연 연)
→ 부즉 무이탈구탁지진연
4. 思出世而無染者
思(생각 사) 出(날 출) 世(세상 세) 而(말 이을 이) 無(없을 무) 染(물들 염) 者(놈 자)
→ 사출세이무염자
5. 須先諳盡世中滋味
須(모름지기 수) 先(먼저 선) 諳(알 암) 盡(다할 진) 世(세상 세) 中(가운데 중) 滋(불을 자) 味(맛 미)
→ 수선암진세중자미
6. 否則 無以持空寂之苦趣
否(아닐 부) 則(곧 즉) 無(없을 무) 以(써 이) 持(가질 지) 空(빌 공) 寂(고요할 적) 之(갈 지) 苦(쓸 고) 趣(뜻 취)
→ 부즉 무이지공적지고취
여기서 특히 出世(출세)의 뜻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성공한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하지만, 이 문장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세속적 욕망과 번잡함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또한 世外風光과 世中滋味는 서로 마주 보는 표현이다. 하나는 세상을 초월해서 바라보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충분히 경험하여 얻는 삶의 깊이다. 이 두 표현의 대비가 이 구절의 묘미다.
■ 김성윤의 한 줄 채근담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떠나려거든 먼저 세상의 맛을 충분히 알아라.”
[김성윤의 채근담 지혜 30]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 남에게 베풀어야 할 것은 용서와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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