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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호메르스의 대서사시:오디세이 연재]“내가 바로 오디세우스다”…구혼자들을 향한 첫 번째 화살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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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의 누더기 속에 몸을 감추었던 이타케의 왕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빼앗긴 집을 되찾기 시작한다

오디세우스는 누구도 당기지 못했던 활에 너무나 쉽게 시위를 걸었다.

그가 활시위를 가볍게 튕기자 제비의 울음처럼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궁전

안에 울려 퍼졌다.

제우스도 하늘에서 천둥을 울려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렸다.

오디세우스가 쏜 화살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열두 개의 도끼 구멍을 차례로 꿰뚫고 궁전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구혼자들은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초라한 거지가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활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아들 텔레마코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텔레마코스야, 네 집에 찾아온 손님이 너를 부끄럽게 하지는 않았구나.

나는 활을 당기는 데 실패하지 않았고, 화살도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제 구혼자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할 때가 되었다.

그다음에는 노래와 수금도 들려주어야겠지.

잔치에는 그런 즐거움이 빠질 수 없으니 말이다.”

평범한 말처럼 들렸지만 텔레마코스는 그 뜻을 알아들었다.

오랜 기다림은 끝났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고, 이제 심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티노오스를 향해 날아간 첫 번째 화살

텔레마코스는 칼을 차고 창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준비된 전사처럼 섰다.

오디세우스는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궁전의 높은 문지방 위로 뛰어올랐다.

한 손에는 활을 들고 다른 손에는 화살이 가득한 화살통을 놓았다.

그는 화살 하나를 꺼내 시위에 걸었다.

구혼자들의 우두머리 안티노오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황금잔을 들어

포도주를 마시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자신이 죽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젊은이와 하인들이 가득한 잔치 자리에서,

누구도 감히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리라 믿었다.

더구나 조금 전까지 조롱하던 늙은 거지가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디세우스가 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안티노오스에게 명중했다.

그의 손에서 황금잔이 떨어졌고, 포도주와 음식이 식탁 위로 쏟아졌다.

안티노오스는 그대로 쓰러졌다.

궁전 안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구혼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방패도 창도 보이지 않았다.

텔레마코스가 전날 밤 아테네의 도움을 받아 무기들을 모두 창고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실수로 안티노오스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구혼자들이 분노하여 외쳤다.

“이 불쌍한 떠돌이여, 사람을 향해 화살을 쏘다니!

이제 너는 살아서 이 집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네가 죽인 사람은 이타케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다.

그의 목숨을 빼앗았으니 네 시신은 들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을 깨닫지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활을 굳게 쥐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오랜 세월 참고 눌러 왔던 분노가 그의 두 눈에서 불길처럼 타올랐다.

 

“너희가 그토록 기다리던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다”

오디세우스가 큰 소리로 말했다.

“개 같이 뻔뻔한 자들아, 너희는 내가 트로이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내 집에 들어와 재산을 탕진하고, 내 하녀들을 욕보였으며,

내가 살아 있는데도 내 아내에게 결혼을 강요했다.

너희는 신들의 심판도, 사람들의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죽음이 너희 모두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너희가 그토록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사람,

너희가 죽었다고 믿었던 이 집의 주인이 바로 나다.

내가 바로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다.”

그 말이 떨어지자 궁전 안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구혼자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들은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았다.

누더기를 걸친 초라한 몸이었지만 활을 잡은 자세와 불타는 눈빛은 거지가 아니었다.

그는 트로이의 성을 무너뜨린 지략가였다.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살아나왔고, 세상의 끝과 죽은 자들의 나라까지 다녀온 사람이었다. 수많은 바다와 죽음을 넘어 마침내 자기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였다.

구혼자들은 문과 창문을 바라보며 달아날 길을 찾았다.

그러나 궁전의 큰 문은 충직한 소지기 필로이티오스가 굵은 밧줄로 단단히 잠가 놓았다. 안뜰로 이어지는 통로는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잔치를 벌이던 집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오랫동안 오디세우스의 집을 제집처럼 사용해 온 사람들이 이제 그 집의 벽과 문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모든 책임을 안티노오스에게 돌린 에우뤼마코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침내 구혼자 가운데 말솜씨가 가장 뛰어난 에우뤼마코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디세우스를 달래려 했다.

“오디세우스여, 당신이 정말 돌아왔다면 우리가 이 집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은 이미 쓰러진 안티노오스였습니다.

그가 페넬로페와 결혼하려 했던 까닭은 단순히 당신의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텔레마코스를 몰래 죽이고 이타케의 왕이 되려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그의 뜻에 끌려다녔을 뿐입니다.

이제 그가 마땅한 벌을 받았으니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가 먹어 치운 음식과 포도주의 값을 모두 갚겠습니다.

한 사람씩 소 스무 마리의 값에 해당하는 청동과 황금을 내놓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재물을 더 바치겠습니다.”

에우뤼마코스는 말로 목숨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에우뤼마코스여, 너희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내놓고 다른 곳에서

더 많은 보물을 가져온다 해도 내 손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너희는 오랜 세월 남의 집에서 먹고 마신 죄만 지은 것이 아니다.

내 아들을 죽이려 했고, 내 아내에게 결혼을 강요했으며, 충성스러운 하인들을 모욕했다. 가난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온 나를 발로 차고 물건을 던지며 조롱했다.

그때 너희 가운데 누구도 안티노오스를 말리지 않았다.

이제 싸울 것인지 달아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라.

그러나 이 집에서 살아 나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우뤼마코스는 오디세우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구혼자들을 향해 외쳤다.

“저 사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활과 화살을 손에 넣었으니 우리 모두를 쓰러뜨릴 때까지 공격할 것이다.

식탁을 방패로 삼고 한꺼번에 달려들어라.

그를 문지방에서 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아직 살아날 수 있다!”

에우뤼마코스는 칼을 뽑아 들고 식탁을 앞세운 채 오디세우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화살이 먼저 날아갔다.

에우뤼마코스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가 평생 무기로 삼았던 교묘한 말도 마지막 순간에는 그를 구하지 못했다.

 

아버지 곁에 선 텔레마코스

에우뤼마코스가 쓰러지자 암피노모스가 칼을 들고 오디세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암피노모스는 구혼자들 가운데 비교적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텔레마코스를 몰래 죽이려는 계획에 반대하기도 했다.

오디세우스도 거지의 모습으로 그에게 이 집을 떠나라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구혼자들의 잔칫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잘못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깨달았다면 늦기 전에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암피노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다가가기 전에 텔레마코스가 창을 던졌다.

창은 정확히 그의 몸에 꽂혔다.

텔레마코스는 창을 뽑으러 달려가지 않았다.

적들에게 둘러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패와 투구와 창입니다.

제가 무기 창고로 가겠습니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의 무기도 가져오겠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어서 다녀오너라.

내 화살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나 혼자 남으면 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것이다.”

텔레마코스는 재빨리 무기 창고로 달려갔다.

그는 방패 네 개와 투구 네 개, 긴 창 여러 자루를 가져왔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는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창을 손에 들었다.

오디세우스는 화살이 남아 있는 동안 활을 계속 사용했다.

시위가 울릴 때마다 한 명의 구혼자가 쓰러졌다.

화살통이 비자 그는 활을 벽에 기대 놓고 방패를 들었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양손에는 창을 잡았다.

이제 문지방 위에는 더 이상 초라한 거지가 서 있지 않았다.

아들을 곁에 세우고 자신의 집을 되찾으려는 이타케의 왕이 서 있었다.

 

텔레마코스가 열어 둔 무기 창고

궁전 안쪽 벽에는 바깥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하나 있었다.

구혼자 아겔라오스는 그 길로 빠져나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에우마이오스가 통로 가까이를 지키고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때 염소치기 멜란티오스가 말했다.

“내가 무기를 가져오겠습니다.

무기 창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멜란티오스는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일하면서도 구혼자들의 편에 선 배신자였다.

그는 거지로 변장한 주인을 모욕하고 발로 찼으며, 구혼자들에게 좋은 염소와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좁은 통로를 지나 무기 창고로 올라갔다.

텔레마코스는 서둘러 무기를 가져오느라 창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

멜란티오스는 그곳에서 방패와 투구와 창을 꺼내 구혼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무장한 구혼자들을 본 오디세우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무기 창고를 열어 둔 모양이구나.

아니면 집 안의 배신자가 저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텔레마코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버지, 제 잘못입니다.

제가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아들을 꾸짖지 않았다.

전투 중에는 이미 저지른 잘못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인정하고 더 큰 피해를 막는 일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에우마이오스에게 말했다.

“누가 무기를 가져다주는지 살펴보아라.

멜란티오스가 한 짓인지 확인해야 한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는 숨어서 무기 창고로 향하는 멜란티오스를 지켜보았다.

그가 다시 투구와 창을 들고 내려오려는 순간 두 사람은 그를 붙잡았다.

멜란티오스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두 충직한 하인은 그의 손발을 단단히 묶어

창고의 높은 기둥에 매달아 두었다.

그리고 서둘러 오디세우스 곁으로 돌아왔다.

이제 구혼자들에게 무기를 가져다줄 사람은 없었다.

 


멘토르의 모습으로 찾아온 아테네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던 그때, 궁전 안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오디세우스의 오랜 친구 멘토르의 모습을 한 아테네였다.

오디세우스는 그녀가 아테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멘토르여, 오랜 친구인 나를 도와주시오.

우리가 젊은 시절 함께 나눈 우정을 기억해 주시오.”

구혼자들도 멘토르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의 적을 돕지 마시오.

오디세우스의 편에 선다면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당신의 집과 재산도 우리가 나누어 가질 것이오.”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멘토르에게까지 위협을 퍼붓는 그들의 오만함을 보고

아테네는 분노했다.

그러나 여신은 곧바로 싸움을 끝내 주지 않았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가 자신의 용기와 힘을 끝까지 증명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테네가 오디세우스를 꾸짖듯 말했다.

“오디세우스여, 트로이에서 싸울 때 보여 주었던 용기와 힘은 어디로 갔느냐?

그대는 아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아홉 해 동안 수많은 적과 싸웠고,

마침내 목마의 계략으로 트로이를 무너뜨렸다.

그런데 이제 자기 집에서 아내와 재산을 되찾는 일을 앞두고 어찌하여

나의 도움만 기다리고 있느냐?”

말을 마친 아테네는 한 마리 제비처럼 날아올라 궁전의 높은 들보 위에 앉았다.

여신은 아직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테네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네 사람을 향해 날아온 구혼자들의 창

구혼자들의 지휘를 맡은 아겔라오스가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한꺼번에 창을 던지지 마라.

여섯 명씩 힘을 모아 먼저 오디세우스를 쓰러뜨려라.

그를 죽이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다.”

여섯 명의 구혼자가 동시에 창을 들어 오디세우스를 향해 던졌다.

그러나 아테네가 창의 방향을 비틀었다.

어떤 창은 문기둥에 박혔고, 어떤 창은 벽을 때렸으며, 또 다른 창은 방패를 스치고

바닥에 떨어졌다.

오디세우스가 외쳤다.

“친구들이여, 이제 우리가 던질 차례다.

우리를 죽이려는 자들을 향해 창을 던져라!”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가 일제히 창을 던졌다.

네 사람은 수적으로 훨씬 불리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서로를 믿는 마음과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집을 되찾기 위해 싸웠다.

텔레마코스는 부모와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에우마이오스와 필로이티오스는 오랜 세월 품어 온 충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반면 구혼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숨만을 구하려 했다.

그들은 함께 잔치를 즐겼지만 위기가 닥치자 하나의 대열을 이루지 못했다.

궁전 안에서 창과 화살이 오가고 방패가 부딪쳤다.

구혼자들은 몇 번이나 문지방으로 몰려들었지만 번번이 뒤로 물러났다.

오디세우스와 세 동료는 서로의 빈틈을 지키며 조금씩 그들을 궁전 안쪽으로 몰아붙였다.

 

하늘에 나타난 아테네의 방패

싸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궁전의 높은 들보 위에서 아테네가

신성한 방패를 들어 보였다.

그것은 어떤 군대라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제우스의 방패 아이기스였다.

구혼자들은 그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싸울 용기를 잃었다.

그들은 놀란 소 떼처럼 궁전 안을 이리저리 달아났다.

그러나 빠져나갈 문은 없었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두 충직한 하인은 흩어진 구혼자들을 뒤쫓았다.

오랜 세월 이어졌던 잔치는 그렇게 끝났다.

주인의 소와 양을 잡고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수금과 노래가 흐르던 궁전에는 무거운 침묵만 남았다.

그곳은 더 이상 구혼자들의 잔칫집이 아니었다.

오디세우스의 집이었다.

 

제단을 붙잡고 용서를 구한 레이오데스

구혼자들의 점술가였던 레이오데스가 제단 곁으로 기어가 오디세우스의 무릎을 붙잡았다.

“오디세우스여,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저는 이 집의 여인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고, 구혼자들의 악행을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잘못을 멈추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 저까지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레이오데스의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었다.

그는 활쏘기 시합에서 가장 먼저 실패한 뒤 이 활이 많은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엄하게 대답했다.

“네가 저들의 점술가였다면 내 아내를 차지할 날이 오기를 신들에게 수없이

기도했을 것이다.

너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내 재산을 먹고 마시며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레이오데스는 끝내 자신이 선택한 무리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잘못을 직접 이끌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알고도 곁에 머물며 이익을 나누었다면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판단이었다.

 

목숨을 건진 가객 페미오스와 전령 메돈

궁전 한쪽에는 가객 페미오스가 떨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름다운 수금이 들려 있었다.

그는 구혼자들을 위해 노래했지만 스스로 원해서 그들의 잔치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의 집을 차지한 뒤 페미오스를 억지로 불러 노래하게 했다.

페미오스는 수금을 내려놓고 오디세우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제우스의 제단 곁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오디세우스여, 저를 죽인다면 훗날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저는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가객입니다.

어느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신께서 제 마음속에 온갖 노래를 심어 주셨습니다.

저는 구혼자들의 뜻에 따라 억지로 이곳에서 노래했을 뿐입니다.

제 마음으로 그들의 편을 든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돌아온 뒤에는 당신을 위해서도 신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페미오스는 죄가 없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전령 메돈도 살려 주어야 합니다.

그는 제가 어린 시절부터 저를 돌보았고, 구혼자들이 저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들은 메돈이 의자 아래에 숨어 있다가 기어 나왔다.

그는 겁에 질려 오디세우스의 무릎을 붙잡았다.

오디세우스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텔레마코스가 그대를 구했소.

이 일을 마음에 새겨 두시오.

악한 일을 하는 것보다 선을 행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그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을.”

오디세우스는 페미오스와 메돈에게 궁전 밖 뜰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심판의 순간에도 죄 없는 사람과 강제로 끌려온 사람까지 무분별하게 벌하지는 않았다.

누구와 같은 자리에 있었는가만이 아니라 어떤 뜻으로 그곳에 있었고,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살핀 것이다.

 

궁전의 문을 연 에우뤼클레이아

싸움이 모두 끝나자 오디세우스는 텔레마코스에게 유모 에우뤼클레이아를

불러오라고 했다.

텔레마코스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유모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부르십니다.”

에우뤼클레이아가 조심스럽게 궁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넓은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오디세우스를 바라보았다.

누더기를 입고 있었지만 이제 그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쓰러진 구혼자들 사이에 서 있었다.

마치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사자처럼 위엄이 넘쳤다.

에우뤼클레이아는 기쁨에 겨워 환성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손을 들어 막았다.

“유모여, 기뻐하되 큰 소리로 외치지는 마시오.

죽은 사람 앞에서 승리를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소.

이들을 쓰러뜨린 것은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신들의 뜻이었소.

그들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고,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욕했소.

자신들의 오만함이 이런 결과를 불러온 것이오.”

오디세우스는 에우뤼클레이아에게 물었다.

“궁전에 있는 여인들 가운데 누가 끝까지 이 집을 지켰고, 누가 구혼자들의 편에

섰는지 말해 주시오.”

에우뤼클레이아는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일하던 여인들 가운데 일부는 페넬로페를 배신하고 구혼자들과 어울렸지만, 나머지는 끝까지 충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오디세우스는 배신한 여인들에게 구혼자들이 어지럽힌 궁전을 깨끗이 치우게 했다.

그 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엄한 벌을 받았다.

구혼자들에게 무기를 가져다준 멜란티오스도 배신의 대가를 피하지 못했다.

원전은 이들의 죽음을 매우 가혹하고 잔인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이 장면의 중심은 처벌의 방법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집 안에서

충성과 배신이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갈렸다는 데 있다.

 

불과 유황으로 집을 정화하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불과 유황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궁전의 넓은 방과 안뜰을 깨끗이 씻고, 유황을 태워 연기가 구석구석 스며들게 했다.

오랜 세월 구혼자들의 탐욕과 조롱으로 더럽혀진 집을 정화하는 의식이었다.

에우뤼클레이아는 주인에게 충성을 지킨 여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횃불을 들고 궁전 안으로 들어왔다.

여인들은 살아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보자 기쁨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의 손을 잡고 어깨와 머리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렸다.

오디세우스도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의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이 집을 지키며 기다려 준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오디세우스의 마음속에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의 귀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집은 되찾았지만, 가장 만나고 싶었던 아내 페넬로페는 위층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20년 동안 기다렸던 남편이 바로 아래에 서 있다는 사실도 아직 알지 못했다.

 

영웅의 귀환은 복수로 끝나지 않는다

구혼자들과의 싸움은 오디세우스의 귀환에서 가장 격렬한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을 위협하고,

손님의 권리를 짓밟고, 집안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람들을 심판했다.

그러나 이 승리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원전의 세계에서 복수는 무너진 정의를 회복하는 방식이었다.

왕과 가장의 권위, 손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성한 의무, 가족과 재산을 지키는

질서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구혼자들은 단지 남의 음식을 많이 먹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주인이 없는 집을 점령하고, 페넬로페의 의사를 무시한 채 결혼을 강요했으며,

텔레마코스를 살해하려 했다.

또한 가난한 나그네로 나타난 오디세우스를 모욕하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렸다.

그들이 받은 심판은 고대 서사시가 오만과 무법에 내린 단호한 결론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진정한 귀환은 적을 쓰러뜨린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전사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페넬로페 앞에 서야 한다.

활과 창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사랑과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

수많은 적을 속인 지혜도, 트로이를 무너뜨린 명성도

페넬로페의 마음을 곧바로 열 수는 없다.

20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길었고, 그녀는 그동안 남편이 돌아왔다는

수많은 거짓말을 들어 왔다.

궁전의 싸움보다 더 조용하고 어려운 시험이 오디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22회의 핵심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구혼자들을 심판한다.

“내가 바로 오디세우스다.”

이 선언은 단순한 신분 공개가 아니다.

이름과 자리, 가족과 집을 빼앗겼던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되찾는 순간이다.

구혼자들은 오랫동안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주인 없는 집과 책임 없는 자유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했던 거지의 누더기 속에는 진짜 주인이 숨어 있었다.

이 장면은 사람의 가치를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함께,

책임 없는 욕망은 언젠가 대가를 치른다는 고대의 교훈을 전한다.

또한 텔레마코스는 더 이상 보호받기만 하는 아들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 곁에서 창을 들고 싸우며 자신의 집과 가족을 지킨다.

제1회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슬퍼하던 소년이 마침내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무력으로 집을 되찾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믿음을 되찾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구혼자들과의 싸움은 끝났지만, 오디세우스에게는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시험이 남아 있다.

그것은 20년을 기다린 아내 페넬로페의 마음 앞에 진실한 남편으로 서는 일이다.

 

다음 23회 예고

제23회|움직일 수 없는 침대…페넬로페가 남편을 시험하다

에우뤼클레이아는 페넬로페에게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다고 알린다.

그러나 수많은 거짓 소식에 지친 페넬로페는 눈앞의 남자를 쉽게 믿지 않는다.

마침내 그녀는 하인들에게 부부의 침대를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명한다.

그 말을 들은 오디세우스는 크게 분노한다.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 삼아 자신이 직접 만든 침대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20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페넬로페의 마음이 마침내 무너진다.

작성자 newsly 작성일 26-09-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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