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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65일, 인생을 빛낸 한마디] 9월18일, 오늘은 아돌프 히틀러,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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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생을 빛낸 한마디] 오늘은 아돌프 히틀러,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하루 한 사람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 918일 만날 아돌프 히틀러로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반면교사를 배우기 위한 인물입니다.

 

오늘의 한마디는 민주주의는 제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입니다.

히틀러 자신은 19337월 연설에서 사실상 민주주의의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야 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나치 정권은 실제로 정당과 언론, 시민적 자유를 차례로 제거하며 독일을 일당독재 체제로 바꾸었습니다.

 

민주주의 안에서 등장한 독재자

히틀러의 역사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국민이 직접 독재자로 선출한 인물도 아니고, 1933년에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은 것도 아닙니다.

 

1933130, 독일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나치당은 의회에서 가장 큰 정당이었지만 과반을 확보한 정당은 아니었습니다. 히틀러와 나치는 이후 기존 헌법과 법률의 허점을 이용하고 정치적 위기를 활용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빠르게 독재체제로 바꾸었습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히틀러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는 밖에서 쳐들어오는 독재자에게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제도 안으로 들어온 권력이 그 제도를 하나씩 없애면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불만과 두려움이 정치의 무기가 될 때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 사회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러한 불만을 파고들었습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적대 구도로 설명하고, 특정 집단을 모든 문제의 원인처럼 몰아세웠습니다. 특히 유대인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반유대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나치당의 이념에는 극단적 민족주의, 반민주주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중심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치가 사람들의 불안을 해결하는 대신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선전은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었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전(propaganda)입니다.

나치는 당시의 최신 매체였던 라디오, 영화, 포스터, 대규모 집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복잡한 문제는 단순한 구호로 바꾸고, 히틀러를 독일을 구원할 지도자로 연출했습니다.

집권 이후에는 선전부를 만들어 언론과 문화까지 통제했습니다.

동시에 비판적인 신문을 폐쇄하고 책을 금지했으며, 나치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자유도 제거했습니다.

거짓말의 위험은 거짓 자체에만 있지 않습니다.

같은 거짓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는 데 있습니다.

 

자유는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았다

나치 독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자유가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법령이 만들어지고,

한 정당이 금지되고,

한 신문이 폐쇄되고,

한 집단의 권리가 제한되었습니다.

19337월에는 다른 정당의 존재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면서 독일은 공식적으로 나치당만 존재하는 일당독재 국가가 되었습니다.

 

1933년부터 1939년 사이에는 유대인의 시민적·경제적 권리를 제한하는 수백 건의 법령과 조치가 시행됐습니다.

작은 권리의 침해가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 전체가 자유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말 가운데 하나는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인간을 우리그들로 나누었을 때

나치즘의 핵심에는 인간을 인종에 따라 서열화하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독일 민족을 우월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유대인과 여러 소수집단을

공동체에서 배제했습니다.

처음에는 말과 선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법률로 차별했습니다.

이어 재산과 자유를 빼앗았고, 결국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았습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 약 600만 명이 살해됐으며, 나치 정권은 그 밖에도 수백만 명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히틀러의 이념과 지도력은 이러한 범죄와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에 핵심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역사가 남긴 교훈은 분명합니다.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집단의 이름으로만 보기 시작할 때 폭력은 쉬워집니다.

 

히틀러는 누구인가?

아돌프 히틀러는 1889420일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 암 인에서 태어났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한 뒤 정치에 뛰어들었고, 1921년 나치당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1923년에는 이른바 맥주홀 폭동을 일으켜 정부 전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투옥됐습니다. 감옥에서 자신의 인종주의·팽창주의적 정치관을 담은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했습니다.

 

1924년 출소 이후에는 선거를 비롯한 합법적 정치과정을 이용해 권력을 확대했습니다.

1933년 총리가 된 뒤 민주주의를 해체했고,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의 권력을 결합해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배가 임박하자 베를린에서 자살했습니다.

 

왜 오늘 히틀러를 읽어야 하는가?

히틀러를 공부하는 목적은 독재자의 능력이나 선전술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한 사회가 독재를 허용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제적 불안, 사회의 분열, 정치에 대한 불신, 반복되는 선전,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제도에 대한 무관심. 이런 요인들이 서로 결합할 때 민주주의는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히틀러라는 사람은 왜 그런 사람이었는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수많은 사람과 제도가 그것을 막지 못했는가?”입니다.

나치의 집권과 독재 전환은 한 사람만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다양한 정치적 선택과 지지, 협조, 침묵과 무관심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오늘의 메시지

민주주의는 선거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언론, 독립된 사법제도, 야당의 존재, 시민의 권리, 소수자의 존엄이 함께 지켜질 때 민주주의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입니다.

거짓을 의심하고,

권력을 감시하며,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는 시민이 있을 때 민주주의는 버틸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작은 출발은 나와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뉴슬리 독자에게 전하는 짧은 성찰

918일에는 자신에게 조금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주장이라면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사회 문제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게 너무 쉽게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 자유에는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가 침해될 때는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순간은 거대한 사건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실보다 선동을 믿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권력의 작은 일탈을 그냥 지나치는 순간에도 조금씩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독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유의 작은 침해를 하나씩 용인할 때 자라난다.” 918, 아돌프 히틀러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남겨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그것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작성자 newsly 작성일 26-09-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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