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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의 새 이름은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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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윤 전 단국대 법정대학장, 한국지방자치발전연구원 원장, 정치학 박사     ©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낸 30여 년 동안 나는 나이를 잊고 살았다.

아침마다 강의실 문을 열면 젊은 눈빛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과 학문을 논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그들의 꿈과 고민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그들과 같은 청춘이 되어 있었다.

 

대학에서 내 이름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복도를 걷거나 교정을 지날 때마다 어디선가 교수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면 학생들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한마디에는 반가움과 믿음, 때로는 도움을 청하는 마음까지 담겨 있었다.

 

학생들은 4년을 주기로 캠퍼스를 떠나고 다시 새로운 얼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졸업식 날이면 섭섭했지만 이듬해 봄, 또 다른 젊음이 교정으로 밀려왔다.

대학은 언제나 청춘이 새로 피어나는 곳이었다.

캠퍼스의 꽃들도 그랬다. 겨울 끝자락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면 노란 산수유가 뒤를 따랐다.

목련과 벚꽃이 교정을 환하게 밝히고, 철쭉이 꽃길을 놓은 뒤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을 타고 강의실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꽃은 피었다 지고 학생들은 들어왔다 떠났지만, 대학은 해마다 새로운 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했다.

한 달이면 한두 권의 신간을 읽으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려 애썼다.

새 책의 종이 냄새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이었다.

그러나 정년을 맞아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익숙했던 내 세상도 조금씩 멀어졌다.

평생 선생으로 살았던 내가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누군가와 의논하던 일도 이제는 혼자 판단하고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

어느 날 낯선 곳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어르신, 이쪽으로 오십시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았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나밖에 없었다.

그제야 , 나를 부르는 말이구나하고 깨달았다.

마음은 여전히 학생들과 토론하던 강의실에 머물러 있는데, 세상은 어느새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놓았다.

 

교수님에서 어르신으로.

존중받는 듯해 고맙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쓸쓸했다.

아니, 벌써 내가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단 말인가?’

세월이 내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얹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보니 어르신이라는 이름에는 늙음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보내는 존중이자, 그 세월만큼 너그러워지고 따뜻해져야 한다는 당부였다.

말 한마디를 아끼고, 젊은이의 서툰 걸음을 기다려 주며, 힘든 사람의 등을 말없이 두드려 주라는 사회의 부탁인지도 모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얻은 이름이지만 이제는 그 이름값을 해야 한다.

더 많이 가르치려 하기보다 귀 기울여 듣고, 앞에서 이끌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밀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이름은 교수님이었다.

이제 나의 새 이름은 어르신이다.

아직은 낯설고 때로는 서글프지만, 그 이름에 따뜻한 사람 냄새를 채워 가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어르신이라 부를 때 나이 든 사람이라는 뜻을 넘어,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교수님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내가, 어르신이라는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 길일 것이다.

 

작성자 newsly 작성일 26-09-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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